루프를 끊는 법에 대하여
같은 생각이 같은 경로를 반복해서 지나가고, 그 경로는 점점 깊어지며, 결국 다른 길은 보이지 않게 된다. 루프를 끊는다는 것은 루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루프 바깥에 더 많은 길을 내는 일일지도.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는 해마가 위축되고,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며, 전전두엽 피질의 회백질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서술은 실제 경험의 질감을 담지 못한다. 우울은 구조의 문제이기 이전에 시간의 문제다. 같은 생각이 같은 경로를 반복해서 지나가고, 그 경로는 점점 깊어지며, 결국 다른 길은 보이지 않게 된다.
헤비안 학습 —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 — 은 학습과 기억의 원리지만, 동시에 고착의 원리이기도 하다. 생각은 실과 같아서, 한번 꼬이면 스스로 더 단단히 조인다.
생성의 규칙들
이 시뮬레이션은 그 은유를 문자 그대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수백 개의 실이 각자의 DNA — 길이, 속도, 색상, 움직임 패턴 — 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들은 프레임마다 조금씩 방향을 틀고, 서로를 감지하고, 때로는 얽힌다.
조화로운 만남이 있다. 비슷한 방향으로 나란히 흐르던 두 실이 가까워지면 이중나선처럼 엮이며 함께 이동한다. 자식이 태어나기도 한다. 부모의 형질이 섞이고 변이가 더해져, 세대를 거듭하며 색상의 분포가 표류한다.
충돌도 있다. 정면으로 맞닥뜨린 실들 중 에너지가 낮은 쪽은 소멸한다. 죽음의 자리에는 잔향이 남았다가 배경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어트랙터가 있다. 보이지 않는 중력처럼 실들을 끌어당겨 궤도에 가두는 존재. 갇힌 실은 색이 변하고, 에너지를 빠르게 소진하며, 빠져나오지 못하면 죽는다. 어트랙터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 잡아둔 실이 없으면 스스로 소멸하고, 그 순간 속박되었던 것들이 흩어진다.
창발, 그리고 그 한계
콘웨이의 생명 게임 이후로, 단순한 규칙에서 복잡한 패턴이 출현하는 현상은 수없이 탐구되어 왔다. 이 작업도 그 계보 안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창발 자체가 아니라, 창발을 지켜보는 경험이다.
화면을 오래 바라보면 특정 색의 계통이 번성하다 쇠퇴하는 것이 보인다. 어떤 영역에 실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리듬이 느껴진다. 의도하지 않은 패턴 — 나선, 군집, 파동 — 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이 몇 가지 규칙의 반복적 적용일 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복잡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 작은 규칙들의 중첩이다. 그렇다면 그 규칙을 바꾸면 결과도 바뀔 것이다. 우울의 루프가 신경가소성의 산물이라면, 다른 방향의 가소성도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끝나지 않는 것들
시뮬레이션에는 종료 조건이 없다. 멸종해도 새로운 개체가 자연 발생하고, 세계는 계속된다. 이것이 한계인지 특징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우울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패턴들 사이에서 비중이 줄어드는 것. 루프를 끊는다는 것은 루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루프 바깥에 더 많은 길을 내는 일일지도.
클릭 한 번으로 새 실이 태어난다. 사소하지만, 개입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