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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팀을 일찍 모으는 것과 늦게 모으는 것, 그것은 마치 갓 볶은 원두의 향을 맡는 시점을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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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by JUNGHUN KIM with AI

팀을 일찍 모으는 것과 늦게 모으는 것, 그것은 마치 갓 볶은 원두의 향을 맡는 시점을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원두가 로스팅 기계에서 쏟아져 나온 직후, 그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맡는 향기는 거칠고 야생적이다. 거기엔 어떤 가능성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반면, 충분히 식히고 가스가 빠져나간 뒤, 밀폐 용기 안에서 며칠간 숙성된 원두의 향은 깊고 정돈되어 있다. 팀을 일찍 모은다는 것은 그 야생의 열기 속에 손을 집어넣는 행위다. 나는 화요일 오후 2시의 나른한 햇살이 주방 식탁 위로 길게 늘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식탁 위에는 식어버린 커피와 닳아빠진 연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고, 나는 보이지 않는 팀원들의 목록을 허공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 일찍 시작한다는 건, 결국 기다림의 시간을 미리 지불하는 거야. 」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오래된 재즈 음반의 재킷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손톱 끝에는 투명한 매니큐어가 발려져 있어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을 일찍 모은다는 것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 가방을 싸는 것과 같다. 우리는 가방 안에 스웨터를 넣어야 할지, 수영복을 넣어야 할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이 주는 묘한 흥분과 불안감. 그것이 초기 결성의 맛이다.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모였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감을 느끼거나, 혹은 그 막연함 때문에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먼지가 부유하고, 누군가 기침을 하면 그 파동이 예민하게 전달되는 시기다.

「 하지만 너무 늦게 모이면, 식어버린 피자처럼 딱딱해지잖아. 치즈는 굳고, 도우는 질겨져. 아무도 그런 걸 먹고 싶어 하지 않아. 」

나는 커피잔을 들어 입술에 댔다. 커피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늦게 팀을 모은다는 것은, 모든 상황이 종료되기 직전에 급하게 막차에 올라타는 것과 유사하다. 필요에 의해, 혹은 닥쳐온 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급하게 호출된다. 거기엔 낭만이나 여유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각자는 이미 완성된 부품처럼 기능적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의 취향이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비 오는 날 즐겨 듣는 음악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만이 그들을 결속시킨다. 그것은 효율적이지만, 어딘가 서글픈 풍경이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11월의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잎사귀들은 바싹 마른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녔다. 팀을 일찍 모으는 것의 가장 큰 맹점은 '시간의 마모'다. 너무 일찍 만난 사람들은, 실제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서로에게 지쳐버릴 위험이 있다. 할 일은 없는데 얼굴은 마주해야 하는 상황. 우리는 의미 없는 회의를 반복하고, 날씨 이야기를 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이미 서로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다. 마치 너무 오래 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껌처럼. 하지만 그 지루한 시간 속에서만 피어나는 유대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공범 의식을 만들어낸다.

「 3년 전에, 홋카이도에서 눈을 치우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

그녀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화법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과거의 파편들. 하지만 그 파편들은 묘하게도 현재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 그때 우리는 폭설이 내리기 2주 전부터 합숙소에 모였지. 눈은 오지 않고, 할 일은 없었어. 매일 난로가에 모여서 고구마를 굽고, 낡은 카드를 돌렸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미 눈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지. 그저 함께 있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처럼. 」

그녀의 말대로라면, 팀을 일찍 모으는 것은 '목적'을 '관계'로 치환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의 성공보다, 함께 고구마를 굽는 행위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비즈니스적으로는 실패일지 모르나, 인생이라는 긴 서사 속에서는 꽤 괜찮은 챕터가 될 수도 있다. 반면 팀을 늦게 모은다는 것은 오직 '목적'만을 위해 '관계'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불이 난 집에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불을 끄고, 장비를 챙겨,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하지만 훗날 그들을 기억할 때 떠오르는 것은 매캐한 연기 냄새뿐일 것이다. 나는 다시 연필을 집어 들었다. 종이 위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일찍 모을 것인가, 늦게 모을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밀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거대한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째깍, 째깍, 째깍.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며 시간을 잘게 쪼개고 있었다. 만약 내가 밴드를 만든다면, 나는 멤버들을 언제 모을까. 베이시스트는 조금 일찍 만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베이스의 리듬은 밴드의 심장박동과 같아서,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텅 빈 연습실 바닥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존 콜트레인이나 빌 에반스에 대해 밤새 떠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템포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색소폰 연주자는 공연 직전에 합류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와 즉흥성을 날 것 그대로 무대 위에 쏟아내기 위해서는, 미리 맞춰보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낯설음에서 오는 긴장감, 그것이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니까.

「 결국 밸런스의 문제야. 」

그녀가 재킷에서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바늘이 LP판의 홈을 따라 미끄러지자,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트럼펫 소리가 흘러나왔다.

「 너무 이르면 썩어버리고, 너무 늦으면 얼어버려. 그 사이 어딘가, 적당히 미지근하고 적당히 긴장된 그 지점을 찾아야 해. 마치 잘 익은 아보카도처럼 말이야. 눌렀을 때 살짝 들어가는 그 느낌. 」

아보카도라. 팀 빌딩을 아보카도 고르는 일에 비유하다니, 역시 그녀답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적당한 때'를 찾기 위해 헤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생에는 '숙성도'를 알려주는 라벨이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그저 감각에 의존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그 타이밍을 가늠할 뿐이다. 어떤 팀은 너무 일찍 만나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흩어지고, 어떤 팀은 너무 늦게 만나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쌓여, 하나의 거대한 오차범위의 역사를 만든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며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톡, 토독, 톡. 빗물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려 도시의 풍경을 일그러뜨렸다. 밖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우산이 형형색색의 버섯처럼 피어났다. 나는 비 오는 날의 냄새를 좋아한다. 젖은 흙냄새와 아스팔트의 비릿한 냄새가 섞인, 도시 특유의 우울한 향기. 이런 날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설령 그가 아주 늦게, 혹은 너무 일찍 온다 하더라도. 팀을 모은다는 행위 이면에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깔려 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세계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질 누군가를 찾는 것. 그것이 매머드를 사냥하던 원시 시대든,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현대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저 거대한 벽을 밀어보지 않겠나?"라는 제안. 일찍 모은다는 것은 그 벽 앞에서 함께 야영을 하며 별을 보자는 제안이고, 늦게 모은다는 것은 벽이 무너지기 직전에 와서 마지막 한 번을 힘껏 밀어달라는 요청이다. 전자는 서사적이고, 후자는 드라마틱하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내 친구 K의 이야기를 해보자. K는 대학 시절, 영화를 찍겠다며 1년 전부터 스태프를 모았다. 그는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우리는 역사를 쓸 거야." 그는 술에 취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외치곤 했다. 하지만 1년 뒤, 정작 촬영이 시작되려 할 때 스태프들은 모두 지쳐 떠나버렸다. 남은 것은 숙취와 카드값뿐이었다. K는 그 후로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못했다. 반면 또 다른 친구 J는 졸업 작품 마감 3일 전에 급하게 후배들을 납치하다시피 모았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비췄다. 3일 밤낮을 새워 찍은 그 조악한 영화는, 놀랍게도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J의 리더십이 뛰어났다기보다는, 극한의 상황이 만들어낸 광기가 화면에 묘한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시다. 하지만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팀의 운명은 결정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하자"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의 파동이 전화선을 타고, 기지국을 거쳐, 상대방의 고막을 진동시킨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미래의 가능성이 분기한다. 예스, 혹은 노. 혹은 "생각해 볼게." 그 대답 하나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우주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 결국 중요한 건, 언제 모이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 아니겠어? 」

그녀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음악이 뚝 끊기자 방 안에는 빗소리만이 가득 찼다. 정적. 그것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소리가 존재하기 위한 여백이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사람을 만들기도 해. 어떤 사람은 일찍 만났으면 평생의 친구가 되었을 텐데, 늦게 만나서 원수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도 있고. 시간은 화학반응의 촉매니까. 」

나는 대답했다. 사람이라는 원소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이라는 용매 속에 녹아 끊임없이 변화한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내가 다르듯이, 봄에 만나는 그와 겨울에 만나는 그는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그러니 팀을 모은다는 건, 변해가는 서로의 시간 축을 정교하게 교차시키는 고도의 수학적 행위이자, 동시에 운명에 몸을 맡기는 도박이다. 이제 해가 완전히 져서 방 안은 어두워졌다. 나는 스탠드 조명을 켰다. 노란 불빛이 책상 위를 동그랗게 비췄다. 빛의 원 안과 밖. 그 경계가 선명했다. 나는 그 경계를 손가락으로 따라가 보았다. 팀이라는 것도 이런 경계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We)와 그들(They). 내부와 외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온기를 가두는 일. 일찍 울타리를 치면 그 안의 풀들이 무성하게 자랄 것이고, 늦게 울타리를 치면 이미 자라난 나무들을 베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레몬 반 조각과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그리고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맥주 한 캔이 있었다. 나는 맥주를 꺼내 땄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솟아올랐다. 거품은 잠시 부풀어 올랐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팀의 열정도 이 거품과 같을까. 처음에 맹렬하게 솟아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면 액체 속으로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그 거품이 사라지기 전에 들이켜야 한다. 아니면 거품이 사라진 뒤에 남은 씁쓸한 맥주의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일찍 모인 팀은 거품을 즐기는 사람들이고, 늦게 모인 팀은 알코올을 즐기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전자는 축제이고, 후자는 현실이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 닿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몸속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이 감각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언젠가 소설 속에서 누군가가 팀을 해체하고 혼자 남겨진 밤을 묘사할 때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 저기, 우리도 팀일까? 」

그녀가 어둠 속에서 불쑥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우리는 팀인가? 아니면 그저 같은 공간과 시간을 우연히 공유하고 있는 타인인가?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인가?

「 글쎄. 만약 우리가 팀이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느슨하고, 가장 비효율적이며, 가장 늦게 결성된 팀일 거야. 목적도 없고, 마감도 없는. 」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몽환적으로 들렸다. 팀을 일찍 모으는 것과 늦게 모으는 것. 결국 정답은 없다. 그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성향, 그리고 운명의 장난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다. 일찍 모았다면 그 지루함을 견뎌낼 인내심이 필요하고, 늦게 모았다면 그 긴박함을 즐길 대담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팀이라는 배를 띄우는 바다의 기본 수칙이다. 창밖의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우고, 빈 캔을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깡통이 구겨지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이제 다시 글을 쓸 시간이다. 나는 연필을 잡고, 종이 위에 첫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려왔다...' 어쩌면 내 소설 속 주인공은 팀을 아주 늦게, 세상이 멸망하기 5분 전에 모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꽤 재미있는 설정이 될 것 같다. 멸망을 앞둔 밴드의 마지막 공연. 관객은 아무도 없고, 오직 무너져 내리는 하늘만이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는 풍경. 팀을 모은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결핍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가진 타인을 찾아 헤매는 여정.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퍼즐 조각들이다. 서로의 요철(凹凸)을 맞추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일찍 만나면 서로의 모서리를 갈아내어 억지로 맞출 시간이 있고, 늦게 만나면 딱 맞는 조각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자는 고통스럽지만 단단해지고, 후자는 외롭지만 완벽해질 수 있다.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나의 팀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는 날,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늦게 와도 상관없다고. 아니, 오히려 늦게 와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의 깊이를 알게 되었고, 당신들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여기서, 빗소리를 들으며, 식은 커피를 마시며, 묵묵히 나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고르는 법을 연습하면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다림이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길고양이가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노란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너도 팀을 찾고 있니? 」

나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대답 대신 꼬리를 살랑거렸다. 어쩌면 오늘 밤, 나의 팀원은 이 고양이 한 마리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이 비 오는 밤을 함께 견뎌낼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팀이다. 가장 늦게, 가장 우연히 만난, 하지만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도착한 나의 작은 팀원. 나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젖은 털에서 비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묘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제 정말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